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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08달러였고 필리핀은 199달러였습니다. 필리핀이 거의 두 배 부유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36,000달러, 필리핀 4,000달러로 격차가 아홉 배가 됐습니다. 제가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7천 개가 넘는 섬, 풍부한 천연자원,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선택이 나빴던 겁니다. 그 선택의 흔적을 하나씩 따라가 봤습니다.

마르코스 독재가 필리핀 경제에 남긴 것
필리핀 보라카이나 세부를 여행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왜 이렇게 가난하지?' 저도 필리핀의 섬 지형을 자료로 들여다보면서 똑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관광 자원만 놓고 보면 동남아 최고 수준인데, 정작 그 혜택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 구조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1965년 12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처음엔 도로를 깔고 학교를 지으며 인기를 끌었지만, 1972년 9월 21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마르코스는 프로클라메이션 넘버 1081(Proclamation No. 1081)에 서명합니다. 여기서 프로클라메이션이란 대통령이 헌법적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발동하는 포고령을 뜻합니다. 계엄령 선포였습니다. 의회는 해산됐고, 야당 지도자들은 한밤중에 끌려갔고, 헌법은 정지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21년 독재 동안 마르코스 일가가 국고에서 빼돌린 돈은 보수적 추정으로 100억 달러입니다. 미국 의회가 1985년에 산정한 수치입니다(출처: 미국 의회). 당시 필리핀 GDP의 33%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역사상 정부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은 사례'로 등재됐을 정도입니다.
제가 더 주목한 건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구조입니다. 정실자본주의란 권력자가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정 산업을 독점적으로 나눠주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사탕 산업은 대학 동기 로베르토 베네딕토에게, 코코넛 산업은 친구 에드아르도 코후안코에게, 바나나는 안토니오 플로리랜도에게. 마르코스와 친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가 된 겁니다. 같은 시기 한국은 5억 달러의 한일 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지어 올렸습니다. 한국이 만든 건 공장이었고, 필리핀이 만든 건 이멜다 마르코스의 신발 3,000켤레였습니다.
- 마르코스 21년 독재 기간 국고 유출 추정액: 최소 100억 달러 (1985년 필리핀 GDP의 약 33%)
- 정실자본주의 구조: 사탕·코코넛·바나나·자동차 등 주요 산업을 측근 가문에 배분
- 같은 시기 한국: 5억 달러로 포항제철 건설,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 선언
토지개혁 실패가 만든 60년의 격차
필리핀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두고 '운이 나빴던 것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숫자를 보고 나서 그 시각을 바꿨습니다. 1950년 기준 필리핀 농지의 70% 가까이가 상위 4% 지주에게 집중돼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은 1949년에 이미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켜 소작농 비율을 70%에서 20% 아래로 낮춰놓은 상태였습니다. 이 차이 하나가 이후 60년의 방향을 갈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산업화 성공 사례들, 즉 일본·한국·대만은 공통적으로 산업화 직전에 토지개혁을 먼저 단행했습니다. 토지개혁이란 대지주의 농지를 강제 매입해 농민에게 재분배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지주 가문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해야 정부가 산업 정책을 밀어붙일 때 카르텔의 저항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민이 자기 땅을 갖게 되면 생산성이 오르고, 그 잉여로 자식을 교육시켜 도시 공장 노동자로 보낼 수 있는 선순환이 시작됩니다.
마르코스는 1972년 대통령령 27호(PD 27)로 토지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개혁 대상이 쌀과 옥수수 농지에만 한정됐고, 사탕수수·코코넛·바나나 농장은 제외됐습니다. 그게 바로 마르코스 측근들의 농장이었습니다. 이름만 토지개혁이었고, 실제로는 정치적 경쟁 가문의 기반만 건드린 셈이었습니다.
1986년 마르코스가 축출된 뒤 코라손 아키노 정부도 1988년 종합토지개혁프로그램(CARP, Comprehensive Agrarian Reform Program)을 내놨습니다. CARP란 5헥타르 이상 농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계획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SDO(주식분배옵션, Stock Distribution Option)라는 조항이 문제였습니다. SDO란 토지를 직접 나눠주는 대신 회사 주식을 농민에게 주는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입니다. 의결권은 여전히 가문이 쥐고 있는 상태로말입니다. 이 조항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아키노 대통령의 친정, 코후안코 가문이 소유한 하시엔다 루이시타(6,453헥타르 규모의 사탕수수 농장)였습니다(출처: 유엔식량농업기구(FAO)). 2013년 기준 필리핀에서 아직 분배되지 않은 농지가 69만 4,000헥타르가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 필리핀의 지니계수는 0.39로, 한국의 0.2보다 한참 높습니다.
OFW 송금 의존 경제,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
필리핀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의외였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국가가 치안을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자리도, 안전망도 충분하지 않으니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 잡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의 가장 뚜렷한 결과가 OFW 현상입니다.
OFW(Overseas Filipino Workers)란 해외에 나가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2024년 기준 해외 거주 필리핀인은 1,080만 명으로 전체 인구 1억 1,400만 명의 약 9.5%에 달합니다. 이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2024년 기준 383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필리핀 GDP의 8.3%에 해당합니다. 자국 제조업 비중(15.7%) 보다 송금 의존도가 절반을 넘어가는 수준입니다.
한국에도 EPS(고용허가제, Employment Permit System) 비자로 입국한 필리핀 노동자가 약 2만 명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7,420명의 병력을 파견하며 한국을 도왔던 나라에서 온 분들이, 이제는 한국에서 임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순한 경제 수치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점입니다. 자국에 제조업 기반이 약하니 좋은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사람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사람이 빠져나가니 내수 산업이 커지지 못하고, 내수가 없으니 기업 투자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1986년 피플 파워 레볼루션(People Power Revolution)으로 마르코스를 몰아낸 이후 36년이 지났지만, 2022년 선거에서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득표율 58.77%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피플 파워란 1986년 2월 마닐라 에드사 도로에 200만 명의 시민이 비무장으로 모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 혁명을 의미합니다. 그 혁명의 기억이 36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입니다.
같은 1987년, 한국에서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그 이후 한국은 노태우부터 현재까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일곱 차례 이어갔습니다. 박정희 가문도, 전두환 가문도 권력을 세습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두 민주주의가 36년 뒤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필리핀과 한국이 1965년에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1965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약 108달러, 필리핀은 약 199달러였습니다. 필리핀이 거의 두 배 앞서 있었고, 1950년대 마닐라는 동남아 금융 허브로 불릴 만큼 발전한 도시였습니다. '우리도 필리핀처럼만 살아보자'는 말이 한국에서 실제로 쓰였을 정도였습니다.
Q. 마르코스가 빼돌린 100억 달러, 실제로 얼마나 큰 금액인가요?
A. 1985년 필리핀 GDP가 307억 달러였으니, 한 가문이 나라 살림의 약 33%를 가져간 셈입니다. 이 사례는 기네스 세계기록에 '역사상 정부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은 사례'로 등재돼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300억 달러까지 추산하기도 하는데, 어느 수치를 따르더라도 국가 경제를 수십 년 후퇴시키기에 충분한 규모라는 점에서는 시각 차이가 없습니다.
Q. 필리핀 토지개혁이 계속 실패한 이유가 뭔가요?
A. 개혁을 설계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개혁 대상과 겹쳤기 때문입니다. 마르코스의 토지개혁(PD 27)은 측근 가문의 환금작물 농장을 제외했고, 아키노 정부의 CARP는 SDO 조항을 통해 아키노 본인의 친정 농장이 토지 분배를 우회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개혁의 칼날이 항상 자기 손 바로 앞에서 멈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OFW 송금이 필리핀 경제에 나쁜 건가요?
A. 단기적으로는 가계 소득을 떠받치고 외화를 공급하는 긍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의존도가 GDP의 8.3%를 넘어서는 수준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국 제조업이 성장하지 않아도 당장 경제가 돌아가니 산업 육성의 유인이 약해지고, 인재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고착됩니다. 송금 경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의존도를 줄일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
1인당 GNP 숫자만 보고 선진국을 판단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의 사례를 따라가다 보니,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누가, 어떤 방향으로 했느냐의 문제입니다. 마르코스 독재, 토지개혁 실패, 가문 정치 회귀, OFW 송금 의존.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정치권력이 경제 시스템 위에 올라타서, 그 권력이 항상 같은 가문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1949년 농지개혁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그 사이클을 끊어낸 것처럼, 필리핀에도 그 사이클을 끊어낼 계기가 몇 번 있었습니다. 1986년 피플 파워가 바로 그 순간이었는데, 36년 뒤 마르코스의 아들이 과반 득표로 다시 집권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흘려듣기 쉬운데, 어떤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느냐가 60년 뒤 나라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AI 기술과 산업 구조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그 방향을 설정하는 사람이 누구냐의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