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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처음 태국 여행에서 트랜스젠더쇼를 봤을 때, 공연이 끝나고 다가오는 분들이 남성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어머님들은 "왠민한 여자 뺨친다"며 웃으셨는데, 그 순간 저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태국엔 왜 이렇게 트랜스젠더가 많은 걸까, 그리고 그게 정말 자연스럽게 문화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 그 궁금증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까터이-태국 트랜스젠더 문화의 진짜 뿌리
태국에 트랜스젠더가 많은 이유를 찾다 보면 온갖 설이 등장합니다. '전쟁을 피하려고 아들을 여장시켰다', '땅의 음기가 강하다', '태국어 억양이 부드러워서 남성이 여성화된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는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대부분 근거가 없는 속설입니다.
태국 트랜스젠더 문화의 실제 기원으로 학계가 주목하는 건 '까터이(Kathoey)'입니다. 여기서 까터이란 몸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태국 고유의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자웅동체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가 현재의 의미로 정착했죠. 트랜스젠더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고, 까터이가 트랜스젠더라는 더 넓은 범주 안에 포함된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이 까터이 문화의 뿌리는 태국의 토속 정령 신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주술 의식에서 남성이 여성 복장을 입고 여성스러운 역할을 수행하는 무당 전통이 있었고, 이것이 남성의 여성화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낮추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19세기 짜끄리 왕실의 궁중 무용단 전통이 더해집니다. 당시 남자 소년들을 선발해 여성 역할의 춤을 추도록 교육한 이 관습이 까터이 문화 형성의 결정적 배경이라고 현재 태국 학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출처: 한국태국학회).
여기에 종교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태국의 주류 종교인 불교에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명시적으로 금기시하는 교리가 없습니다.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도 성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상이 등장하죠. 과거 종교가 국가 정체성과 직결되던 시대에, 이 관용적 태도는 문화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겁니다.
- 까터이(Kathoey): 태국 고유의 개념으로 남성 신체를 가진 여성 정체성을 뜻함
- 짜끄리 왕실 궁중 무용단: 남성에게 여성화 교육을 시킨 역사적 관습
- 불교 교리: 트랜스젠더를 금기시하지 않아 사회적 수용의 토대가 됨
- 토속 정령 신앙: 남성 무당의 여성 복장 전통이 문화적 허용의 씨앗
트랜스젠더쇼-제가 태국에서 직접 목격한 것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태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였습니다. 효도관광, 신혼여행, 사원여행까지 일본보다 태국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패키지 일정에는 트랜스젠더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공연 자체는 화려하고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무대 위에 선 분들은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솔직히 처음엔 출연자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으러 나왔을 때, 같이 간 어머님들이 "웬만한 여자 뺨친다"며 웃으셨는데,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단순히 외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국이 이 문화를 얼마나 세련되게 다듬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 미인대회가 2004년 태국에서 처음 개최됐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 있는 트랜스젠더 미인대회가 태국에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태국은 이 문화를 숨기거나 단속하는 대신 관광 자원이자 문화 콘텐츠로 정면에 내세웠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태국인들이 불편하거나 금기시되는 것들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제가 태국에 있을 때 충격을 받은 것 중 하나가 교통사고 현장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잡지 표지에 싣는 관습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문화를 무대 위에 올리는 방식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는 태국 특유의 문화적 태도가 트랜스젠더쇼라는 형태로 정착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경제적 이유-천국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현실
태국에 트랜스젠더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성전환 수술도 돈이 드는데 왜 경제적 이유로 전환을 선택하는가?'라는 것이죠. 저도 처음엔 그 부분이 납득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건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정의를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트랜스젠더란 반드시 수술을 받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신체적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포함하며, 수술 없이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트랜스젠더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여장을 하고 여성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태국은 GDP의 상당 비중을 관광 산업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출처: World Bank - Thailand). 이 구조 속에서 하류 계층 남성은 여성에 비해 관광·서비스업에서 수입을 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동기로 여성화를 택하거나 유흥업에 진입하는 경우가 생겨난 겁니다. 이건 성 정체성과는 별개의 경제적 선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태국이 트랜스젠더의 천국이라는 인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으로 느낀 것도,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보수적이고, 공직 진출은 암묵적으로 제한됩니다. 정부 의료·복지 혜택에서도 차별이 존재합니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유흥업에 집중되면서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악순환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군 복무 문제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태국은 한국처럼 징병제 국가이며, 성전환 수술을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수술 상태에 따라 개별 판정을 받고, 별도의 제비 뽑기(추첨제) 방식으로 입대 여부가 결정되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태국에 트랜스젠더가 많은 진짜 이유가 뭔가요?
A. 단일한 이유는 없습니다. 까터이 전통, 궁중 무용단 문화, 불교의 관용적 교리가 역사적 배경으로 작용했고, 현대에는 관광 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경제적 동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입니다.
Q. '전쟁을 피하려고 아들을 여장시켰다'는 말 사실인가요?
A. 사실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2007년 KBS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후 퍼진 속설로, 태국인들도 모르는 내용이고 학문적으로도 근거가 없습니다. 태국 학계에서는 트랜스젠더 문화의 기원을 까터이 전통과 짜끄리 왕실 궁중 무용단에서 찾고 있습니다.
Q. 태국은 정말 트랜스젠더에게 살기 좋은 나라인가요?
A.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노출된 분야에서는 비교적 수용적이지만, 농촌 지역의 보수적 시선, 공직 진출 제한, 복지 혜택 차별 등 구조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천국이라는 표현은 관광지 이미지가 만든 과장된 인식에 가깝습니다.
Q.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면 군대를 안 가도 되나요?
A. 자동 면제는 아닙니다. 태국은 징병제를 시행하며 수술 상태에 따라 개별 판정을 받습니다. 별도 제비뽑기 방식의 추첨제가 있어 검은 표를 뽑으면 면제, 빨간 표를 뽑으면 2년 복무가 되는 구조이며 트랜스젠더도 기본적으로 이 대상에 포함됩니다.
Q. 트랜스젠더와 까터이는 같은 말인가요?
A. 엄밀히는 다릅니다. 까터이는 태국 고유의 개념으로 남성 신체를 가진 여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며, 트랜스젠더라는 더 넓은 범주 안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보는 게 정확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성별 정체성과 신체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결론
태국 여행에서 트랜스젠더쇼를 보고 돌아오던 날, 저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건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니 그들의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게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태국이 그 어려운 일을 완전히 해결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은 다른 나라와 분명히 다릅니다.
어쩌면 저는 우리 기준으로 태국을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그 안에서 형성된 관습도 다릅니다. 태국의 까터이 문화나 트랜스젠더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먼저라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태국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이 문화가 궁금했던 분들께, 이 글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맥락 있는 이해의 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