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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김포공항 근처에서 길을 묻던 몽골 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제가 몽골이라는 나라를 처음 의식한 순간이었습니다. 징기스칸과 고비사막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몽골이, 지금은 세계에서 한국 문화를 가장 가까이서 체험하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 적잖이 놀랍습니다.

울란바토르, 분지에 갇힌 도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완전한 분지 지형입니다. 분지(盆地)란 주변이 산이나 고지로 둘러싸여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 지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거대한 그릇 안에 도시가 들어앉은 형태입니다. 이 구조가 왜 문제냐면, 도시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소련이 이 도시를 설계할 때 상정한 인구는 고작 15만~2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울란바토르에는 몽골 전체 인구 35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몰려 살고 있습니다. 애초에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계획이 지금의 과밀(過密) 상태를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과밀이란 도시가 수용 가능한 인구를 초과한 상태를 뜻하는데, 울란바토르는 설계 용량의 수십 배에 달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 외곽으로 눈을 돌리면 게르촌이 넓게 펼쳐집니다. 게르촌이란 유목 생활을 접고 도시로 유입된 이들이 이동식 천막 주거인 게르(ger)를 모아 형성한 비공식 주거지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폐타이어와 각종 쓰레기를 태웁니다. 그 유독 가스가 분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울란바토르 하늘 위에 시커먼 층을 만들어 냅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울란바토르는 겨울철 초미세먼지 농도가 WHO 권고 기준을 수십 배 초과하는 수준으로 기록된 바 있습니다(출처: WHO 대기오염 데이터).
사막화(desertification)도 인구 집중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입니다. 사막화란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방목 등으로 초원이 황폐화되는 현상입니다. 매년 봄이면 수십만에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얼어 죽는 조드(dzud) 현상이 반복됩니다. 조드란 몽골 특유의 기상재해로, 여름 가뭄 뒤 혹독한 겨울 한파가 겹쳐 가축이 대량 폐사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이 생계를 위해 울란바토르로 몰려들고, 도시는 계획 없이 팽창을 거듭합니다.
한류가 바꾼 몽골의 일상
울란바토르에 가본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치를 확인하고 나서는 납득이 됐습니다. CU 편의점이 울란바토르에만 약 600여 개, GS25가 약 300여 개 운영 중이라는 것입니다. 아파트 동마다 편의점 하나가 붙어 있는 수준입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훨씬 깊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수년간 일하고 귀국한 몽골인들이 한국 문화를 고스란히 들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소비 습관이 아니라 생활 방식 자체였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충주와 제천에서 5년간 일하고 귀국한 분이 몽골 시골 마을에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을 열었다는 사례입니다. 현지인들을 위해 만든 그 김치찌개가, 고기 반 김치 반으로 꽉 채워진 그 냄비가,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한류(Korean Wave), 즉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현상이 몽골에서는 생활 깊숙이 뿌리내린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배우들이 마시던 소주, 들고 다니던 편의점 컵라면, 바르던 화장품을 자국 물가에 비해 상당히 비싼 가격을 치르고도 구매하는 것입니다. 몽골 젊은 세대에게 CU 편의점은 단순한 슈퍼마켓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조사 결과를 보면, 몽골은 한류 콘텐츠 소비 지수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위치하는 국가 중 하나로 나타납니다(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이러한 친근감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작용합니다. 몽골은 자원 개발과 인프라 건설 대부분을 중국 자본에 의존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한국과의 연대감을 훨씬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 울란바토르 내 CU 편의점 약 600여 개, GS25 약 300여 개 운영
- 한국 귀국 경험자들이 현지에서 한국식 식문화·소비문화를 직접 전파
- 파리바게트, 한국계 커피 프랜차이즈 등이 몽골 도심 상권 장악
- 한국 드라마·음악을 통한 한류 콘텐츠 소비가 소비 패턴으로 연결
인구 350만, 몽골과 한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
몽골의 인구는 약 350만 명입니다. 땅 면적은 156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7배가 넘지만, 그 광활한 영토에 불과 350만 명이 사는 나라입니다. 제가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은 "이 나라는 구조적으로 강대국이 되기 어렵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에 필요한 기술력과 자본, 노동력 모두를 외부에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알타이어계(Altaic languages family)라는 언어 분류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알타이어계란 한국어, 몽골어, 튀르크어 등이 어순과 문법 구조에서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보는 언어 계통을 말합니다. 주어-목적어-동사 순서가 같고, 발음 체계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몽골인들은 한국어를 비교적 빠르게 익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몽골 사람들이 6개월 만에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관계를 단순한 문화 소비로만 보지 않습니다. 한국은 지금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반면 몽골은 젊은 인구가 상당하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습니다.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묘책은 없겠지만, 알타이어계 언어를 쓰는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 단단히 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이롭다는 생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몽골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내륙으로 끼어 있는 구조, 즉 이중 내륙국(double landlocked country)의 처지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중 내륙국이란 바다와 직접 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접국도 모두 내륙국인 경우를 말합니다. 몽골은 이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과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한국이라는 제3의 파트너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간극을 우리가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울란바토르가 왜 이렇게 공기가 나쁜가요?
A. 분지 지형 때문에 오염 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큽니다. 여기에 도시 외곽 게르촌 주민들이 겨울철 난방을 위해 폐타이어와 쓰레기를 태우면서 유독 가스가 더해집니다. 소련 시대에 15만~20만 명 규모로 설계된 도시에 지금은 그 수십 배의 인구가 몰려 있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입니다.
Q. 몽골에 한국 편의점이 왜 이렇게 많아요?
A. 한국에서 일하고 귀국한 몽골인들이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돌아온 것이 결정적 배경입니다. 한류 드라마를 통해 한국 생활 방식에 친숙해진 젊은 세대가 CU나 GS25를 단순한 편의점이 아닌 한국 문화 체험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도 한국 브랜드 선호를 강화하는 데 한몫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몽골 인구가 350만밖에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적은 건가요?
A. 몽골은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인 지형 특성상 농경이 어렵고, 전통적으로 유목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인구가 자연스럽게 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여기에 사막화로 인한 생계 위협, 겨울철 조드 현상으로 가축이 대량 폐사하는 환경도 인구 증가를 제한하는 요인입니다. 인구가 적다는 것 자체가 개발과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몽골 사람들이 한국어를 빨리 배운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알타이어계 언어군 특성상 한국어와 몽골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 같고 문법 구조도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점이 학습 속도를 높이는 데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다만 발음 체계에는 차이가 있어 어렵게 느끼는 부분도 있다는 의견도 있으므로, 개인차는 존재합니다.
결론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빈국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의료 수준에서 G7에 견줄 만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 저력이 지금 몽골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단순한 수출 성과 이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한국과 몽골의 관계가 일시적인 한류 소비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과제 앞에 서 있고, 몽골은 자원과 잠재력은 있지만 인프라와 자본이 부족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김포공항 근처에서 길을 묻던 그 몽골 분들처럼, 양국이 서로를 향해 먼저 말을 거는 용기를 계속 이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