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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유럽 여행 전까지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을 못 했습니다. 막연히 '유럽엔 모기가 없나?' 싶었는데, 독일에서 머물던 첫날 밤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왕벌이 방 안으로 들어와 그놈 잡느라 밤을 꼬박 샌 적이 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건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의 창문이 방충망 없이도 유지되는 데는 건축 구조, 역사적 세금 제도, 그리고 기후라는 세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창문세와 건축자재가 만들어낸 새로 창문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건물 외벽에 세로로 길쭉한 창이 줄지어 박혀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처음엔 그냥 디자인 취향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수백 년에 걸친 건축 구조와 세금 역사의 산물이었습니다.
유럽의 전통 건축은 조적식 구조(masonry construction)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조적식 구조란 돌이나 벽돌을 쌓아 벽 자체가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벽이 무너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로로 넓게 창을 뚫는 건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돌과 벽돌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채광을 확보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폭은 좁고 높이는 긴 창이 정착된 겁니다.
여기에 18세기 창문세(window tax)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창문세란 창문의 수나 크기에 비례해 부과하던 세금으로, 영국에서 시작해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도입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창의 너비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려고 창을 더 좁고 길게 냈습니다. 게다가 도로에 면한 건물 정면의 폭에 비례해 과세하는 나라도 많았습니다. 건물 자체를 좁게 짓고 안쪽으로 길게 늘이다 보니, 창도 덩달아 세로 방향으로 굳어진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와 미국·캐나다는 기둥식 구조(post-and-beam construction)를 택했습니다. 기둥식 구조란 나무 기둥이 하중을 받고 벽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역할만 하는 방식입니다. 벽을 뚫어도 건물이 무너질 염려가 없으니, 가로로 넓은 창을 내는 게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미국의 경우엔 개척 초기에 주변에 나무가 넘쳐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목재 건축이 정착됐고, 그 결과 가로로 긴 창과 방충망이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이 차이가 방충망 유무의 출발점이 됩니다.
- 조적식 구조(유럽): 벽이 하중을 지탱 → 창을 넓게 낼 수 없음 → 세로로 긴 창 정착
- 창문세(18세기): 창의 너비나 개수로 과세 → 세금 회피 목적으로 창을 더욱 좁게 제작
- 기둥식 구조(한국·미국): 벽 뚫기 자유로움 → 가로로 넓은 창 + 방충망 설치 가능
기후와 틸트창이 방충망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
제가 유럽을 다니면서 느낀 건,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햇볕은 강하지만 습기가 낮아 한국의 여름처럼 온몸이 끈적거리는 불쾌함은 덜했습니다. '우리나라 여름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건조한 기후가 방충망이 없어도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유럽의 여름은 고온 건조한 대륙성 기후(continental climate)가 지배적입니다. 대륙성 기후란 바다의 영향을 적게 받아 기온 변화가 크고 강수량이 적으며 습도가 낮은 기후를 말합니다. 모기와 파리는 물웅덩이나 습한 환경에서 번식하기 때문에, 건조한 유럽의 여름은 곤충 밀도 자체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인들 스스로도 "집 안으로 모기나 나방이 들어오는 건 일 년에 한 달 정도의 사소한 불편"이라고 말합니다. 제 경험상도 한국의 7~8월과 비교하면 확실히 체감 차이가 있었습니다.
창문 구조의 차이도 결정적입니다. 유럽의 창문은 대부분 틸트 앤 턴 창(tilt-and-turn window)입니다. 틸트 앤 턴 창이란 창 상단을 안쪽으로 살짝 기울이거나(틸트), 창 전체를 안으로 완전히 여는(턴) 두 가지 방식을 하나의 창에서 구현한 방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미닫이창처럼 옆으로 밀어 여는 게 아니라,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창 바깥쪽에 방충망을 붙이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달더라도 고정식이 될 수밖에 없어, 방충망을 통해 사시사철 바깥을 바라봐야 한다는 현실적 불편함이 생깁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건비가 높은 유럽에서 창문에 맞춤 방충망을 제작·설치하는 비용은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1년에 몇 번 들어오는 벌레 때문에 돈과 미관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엔 이 균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한여름 기온이 46도까지 치솟으면서 열사병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출처: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기온 상승과 함께 지중해 연안에서 뎅기열 매개 모기인 흰 줄 숲모기(Aedes albopictus)의 서식 범위가 북상하고 있습니다. 흰 줄 숲모기란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등을 매개하는 열대·아열대성 모기로, 과거엔 유럽 남부에서도 보기 어려웠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변화가 단순한 기후 이슈를 넘어 유럽인들의 주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출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여름 평균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강수 패턴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 방충망을 달기는 여전히 어렵겠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 짓는 건물에서는 설계 단계부터 방충망을 고려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럽에는 진짜 모기가 없나요?
A. 없는 게 아닙니다. 저도 독일에서 직접 경험했지만 모기와 벌레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건조한 기후 덕분에 한국보다 밀도가 낮고, 유럽인들이 "1년에 한 달 정도의 불편"으로 여길 만큼 빈도가 적다는 의미입니다. 남유럽 지역은 북유럽보다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Q. 창문세가 지금도 존재하나요?
A. 현재는 폐지된 제도입니다. 영국은 1851년, 프랑스는 19세기 후반에 창문세를 없앴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간 이어진 과세 회피 습관이 건축 설계 관행으로 굳어진 결과, 지금도 세로로 긴 창이 유럽의 표준처럼 남아 있는 겁니다.
Q. 유럽에도 방충망 달 수 있는 창문이 있나요?
A. 달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틸트 앤 턴 창 구조상 외부에 고정식으로 부착하는 방법밖에 없어 개폐가 불가능해집니다. 비용 문제도 있어, "일 년에 몇 번 들어오는 벌레 때문에 굳이 달아야 하나"라는 시각이 유럽에서는 여전히 우세한 것 같습니다.
Q. 기후변화로 유럽도 방충망을 달기 시작할까요?
A. 조심스럽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뎅기열 매개 모기의 북상과 여름 기온 급등이 맞물리면서, 오래된 건물은 어렵더라도 신축 건물 위주로 변화가 생길 여지는 충분합니다. 다만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건축 문화가 빠르게 바뀌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어,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
유럽에 방충망이 없는 건 단순히 "모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조적식 구조의 건축 전통, 창문세라는 역사적 세금 제도, 그리고 건조한 기후가 수백 년에 걸쳐 하나의 문화로 굳어진 결과입니다. 제 경험상 유럽의 여름 기후는 부러울 정도로 쾌적했지만, 최근의 기상 이변을 보면 그 전제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생깁니다.
40도를 넘나드는 여름과 아프리카 모기의 북상을 보면, "방충망은 쓸데없는 돈 낭비"라는 유럽인들의 느긋한 시각도 머지않아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서는 구조적으로 선택지가 좁겠지만, 새로 짓는 건물에서는 설계 단계부터 방충망을 고려하는 변화가 조금씩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