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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중 시장에 들렀다가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생선 코너가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나 일본 시장에서 보던 살아 움직이는 생선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소금에 절인 덩어리나 진공 포장된 연어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인데 왜 이럴까, 그 궁금증이 오래 남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건 단순한 입맛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생김새부터 종교, 역사까지 겹겹이 쌓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럽의 바다는 왜 식탁에서 멀어졌을까-환경이 만든 거리
유럽 해변을 직접 걸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파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가 포르투갈 해안을 따라 이동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정해진 해수욕장 구역을 벗어나면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고, 밀물과 썰물의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갯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절벽과 모래사장이 이어졌습니다.
이게 단순한 풍경 차이가 아닙니다. 갯벌 생태계(tidal flat ecosystem)라는 개념이 여기서 핵심입니다. 갯벌 생태계란 강에서 흘러온 퇴적물과 유기물이 쌓이고,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산소와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천연 부화장을 말합니다. 미생물부터 조개, 게, 작은 물고기까지 먹이사슬이 촘촘하게 형성되는 시작점인 셈입니다. 동아시아의 서해나 일본 내해가 이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반면, 유럽 해안은 파도가 거세고 조수간만의 차가 작아 퇴적물이 쌓일 틈이 없습니다.
북대서양은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겨울 평균 파고가 5m를 넘고, 폭풍이 몰아칠 땐 20m 이상으로 치솟습니다. 냉장 기술도 동력 선박도 없던 중세에 이 바다로 나간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노와 돛대로 움직이는 목선으로는 감당이 안 됐죠.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에서는 마을 어부 전체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쪽 지중해는 잔잔하지만 다른 이유로 생산성이 낮습니다. 지중해는 대서양과 연결된 통로가 폭 14km 남짓의 지브롤터 해협 하나뿐입니다. 해류 순환이 느리고, 큰 강도 거의 없어 육지에서 흘러드는 영양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영양분이 줄면 플랑크톤이 줄고, 플랑크톤이 줄면 먹이사슬 전체가 빈약해집니다. 멸치, 정어리, 도미 정도가 주를 이루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쁘지만 먹을 게 없는 바다, 제가 지중해를 보면서 느낀 솔직한 인상이기도 합니다.
- 북대서양: 평균 파고 5m 이상, 냉수성 어종 위주, 산업형 대량 어업 발달
-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하나로 연결, 해류 순환 느림, 플랑크톤·영양분 부족
- 유럽 해안 전반: 갯벌 거의 없음, 절벽·급경사 해안선, 조수간만 차 작음
비린내와 종교가 굳힌 편견 — 유럽 식문화의 속사정
유럽 투어 중 생선 요리가 나온 날을 떠올려 봅니다. 거의 예외 없이 소금 간한 구운 생선에 레몬 한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처음엔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냥 조리법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냄새를 잡는 것이 요리의 목표였던 겁니다.
여기서 TMAO(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라는 물질이 등장합니다. TMAO란 차가운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세포가 얼지 않도록 스스로 만들어내는 삼투 조절 물질로,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염도가 높은 바다일수록 이 물질이 더 많이 축적됩니다. 북대서양과 지중해는 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바다입니다. 반면 우리가 회로 즐기는 광어나 도미, 우럭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염도가 낮은 바다에서 자라기 때문에 TMAO 생성량이 적고, 그래서 냄새도 훨씬 약합니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유럽에서 잡은 생선은 즉시 손질하지 않으면 악취가 심했을 겁니다.
여기에 종교적 맥락이 더해집니다. 중세 가톨릭에서는 금육일(abstinence day) 규정을 엄격히 적용했습니다. 금육일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기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과 사순절 기간에 육류 섭취를 금지하는 관행입니다. 고기가 욕망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생선은 그 대체재로 식탁에 올랐습니다. 즐거움이 아니라 절제의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사회적 낙인도 작동했습니다. 사냥은 귀족의 특권이었고, 고기는 신분의 증표였습니다. 평민은 염장 대구나 훈제 청어처럼 냄새가 강한 보존 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구도가 오래 반복되면서 생선은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라는 문화적 기억이 굳어졌습니다. 출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수산물 소비 통계를 보면, 세계 수산물 소비의 약 3분의 2가 아시아에서 이루어집니다. 인구 비중을 감안해도 서구권 전체의 소비량이 아시아 하나보다 현저히 낮다는 건, 단순한 접근성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화적 누적의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밥상은 왜 달랐을까 — 바다 위의 식문화
일본 여행 중 새벽 참치 경매를 보러 가는 유럽인 단체 관광객을 자주 봤습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유럽인 대상 일본 투어에는 시장 경매 코스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생선이 가득한 시장, 눈앞에서 이뤄지는 대형 참치 경매, 그리고 생선을 날로 먹는 문화. 그들에겐 낯선 광경 자체가 볼거리입니다. 반면 우리에게는 그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인 겁니다.
이 차이는 바다의 생산성에서 시작됩니다. 동아시아의 바다는 구조적으로 풍요롭습니다. 황하, 양쯔강, 한강처럼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들이 막대한 퇴적물과 유기물을 연안으로 실어 나릅니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산소와 영양분이 활발하게 순환합니다. 이런 환경이 어류 생물다양성(marine biodiversity)을 높이는 핵심 조건입니다. 어류 생물다양성이란 특정 해역에서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해양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 값이 높을수록 어획 가능한 어종이 많아집니다.
출처: 유럽연합 수산물 통계기관 유로피시(EUMOFA)에 따르면, 유럽의 어패류 소비에서 연어가 전체의 약 44%를 차지하고 참치 13%, 연어 11%로 상위 세 품목이 소비의 68%를 점유합니다. 수십 가지 어종을 날로, 말려서, 발효시켜, 국물로 끓여 먹는 동아시아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에 오는 유럽인들이 생선회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도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비린내가 적다는 게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막연한 두려움보다 직접 경험이 앞서는 순간, 편견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물론 아직 일반적인 유럽인의 밥상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중부 유럽이나 동유럽처럼 바다와 더 거리가 먼 지역은 치즈, 버터, 육류가 식탁의 중심이고, 생선이 필요하면 캔에 든 통조림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합니다. 살아 있는 생선을 굳이 찾을 이유가 없는 환경인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럽 사람들은 정말 생선을 거의 안 먹나요?
A. 완전히 안 먹는다기보다 종류가 매우 한정적입니다. 유로피시 통계 기준으로 연어, 참치, 대구 세 가지가 전체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우리처럼 제철 생선을 다양하게 즐기는 식문화와는 결이 다릅니다. 해안가 지역은 그나마 낫지만,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생선 자체가 식탁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Q. 유럽 생선이 비린 이유가 따로 있나요?
A. 있습니다. 차갑고 염도 높은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일수록 TMAO라는 삼투 조절 물질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 물질이 생선 특유의 비린 향을 유발하는 주범입니다. 북대서양과 지중해의 생선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냄새가 강한 편입니다. 반면 동아시아의 따뜻한 연안 어종은 TMAO 생성이 적어 회로 먹어도 거부감이 덜합니다.
Q. 지중해 연안 나라들도 생선을 안 먹나요?
A. 이탈리아나 그리스처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해산물을 좀 더 먹습니다. 하지만 지중해 자체가 영양분이 부족한 닫힌 바다라 어종이 단순하고 개체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성보다는 멸치, 정어리, 도미 같은 몇 가지 어종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조입니다.
Q. 유럽에서 해초를 먹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A. 유럽의 차갑고 염도 높은 바다 환경에서는 우리가 즐기는 미역이나 다시마류가 잘 자라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해초는 식재료가 아니라 비료나 약재로 분류됐습니다. 냄새가 강하다는 인식도 컸습니다. 최근 아시아 식문화가 퍼지면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아직 일반 식탁에 오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Q. 유럽인이 일본에서 참치 경매를 보러 가는 이유가 뭔가요?
A. 그들에게 살아 있는 생선이 즐비한 시장과 대형 참치를 경매로 거래하는 장면 자체가 매우 낯선 광경이기 때문입니다. 생선이 일상이 아닌 문화권에서 온 만큼, 동아시아의 어시장은 그 자체로 이국적인 볼거리가 됩니다. 실제로 유럽인 대상 일본 투어 코스에 어시장 경매가 포함되는 경우를 제가 직접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결론
유럽인이 생선을 즐기지 않는 건 입맛이 까다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거칠고 차가운 북대서양, 영양분이 부족한 지중해, 갯벌 없는 해안선, 비린내를 유발하는 TMAO, 금육일이 만든 부정적 인식, 고기를 신분의 상징으로 삼은 역사까지.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입니다. 반대로 동아시아의 식탁이 바다로 가득 찬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풍요로운 갯벌, 긴 강, 높은 조수간만의 차. 자연이 먼저 환경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환경에 맞춰 살아온 것이죠.
유럽 여행에서 생선 코너가 작다고 느꼈던 그 순간이 이제는 다르게 읽힙니다. 식탁은 결국 그 땅과 바다의 오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유럽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현지 생선 요리를 한번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것과 얼마나 다른지 직접 비교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