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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면 닿는 미국 땅이 있습니다. 연간 한국인 관광객만 75만 명에 달하는 괌 이야기입니다. 제가 처음 괌을 알아볼 때 단순한 휴양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 작은 섬이 품고 있는 역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페인, 미국, 일본을 차례로 거쳐온 4,000년의 흔적이 지금의 괌을 만들었고, 그 위에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휴양지라는 타이틀까지 얹혔습니다.

괌의 역사-세 번 바뀐 국적, 지워지지 않은 차모르
괌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차모로(CHamoru)입니다. 여기서 차모로란 기원전 2000년경 동남아시아에서 항해해 온 오스트로네시아계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로, 괌의 첫 번째 주인들입니다. 이들이 남긴 라테 스톤(Latte Stone)은 지금도 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지면 위에 세운 거대한 석조 기둥으로 집을 그 위에 올려 짓던 독특한 건축 방식의 흔적입니다
그 평화가 깨진 건 1521년이었습니다. 포르투갈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괌에 상륙하면서 유럽에 이 섬의 존재가 알려졌고, 1565년 스페인 장군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차모로인의 동의 따위 없이 괌을 스페인 영토로 선언해 버립니다. 이후 300년 넘게 이어진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가톨릭이 뿌리내렸고, 마닐라 갤리온 무역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었습니다. 마닐라 갤리온 무역이란 스페인이 멕시코와 필리핀 마닐라 사이를 오가며 은과 향신료를 교환하던 대규모 태평양 무역로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에 차모로인 인구는 4만~6만 명에서 단 3,500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 탓이 컸고, 스페인이 노동력 확보를 위해 멕시코와 필리핀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차모로인의 혈통도 빠르게 혼혈화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순수 혈통의 차모로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번째로 국적이 바뀐 건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였습니다.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 메인호가 원인 불명으로 폭발해 266명이 사망하자, 미국은 스페인의 소행이라며 선전포고를 했고 결국 스페인의 모든 식민지를 넘겨받는 평화조약을 체결합니다. 괌도 그렇게 미국 땅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국적 교체는 더 혹독했습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 일본군이 괌을 점령하면서 섬 이름을 '오미야 섬'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약 31개월간의 점령 기간 동안 차모로인들은 강제 노동, 가족 이산, 감금, 처형을 겪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괌 원주민들이 일본에 대해 깊은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습니다.
1944년 7월 21일, 미군이 일본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괌을 탈환했습니다. 미군 약 3천 명, 일본군 약 1만 8천 명이 전사한 전투였습니다. 이 날이 지금도 괌 최대 공휴일인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기념됩니다.
1950년 미국이 괌 조직법(Organic Act of Guam)을 제정하면서 괌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괌 조직법이란 괌을 미국의 미편입 영토(Unincorporated Territory)로 공식 지정하고 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연방 법률을 말합니다. 미편입 영토란 미국 헌법이 완전히 적용되지 않는 자치 지역으로, 주민이 미국 대선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Government of Guam).
괌의 민족·종교 구성
현재 괌의 인구는 16만 명을 넘었고, 민족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 차모로인(CHamoru): 약 37~40% (괌의 원주민이자 혼혈의 역사를 가진 주류 집단)
- 필리핀계: 약 25~28% (지리적 인접성과 스페인 무역로의 영향으로 형성된 대규모 이민 집단)
- 기타 아시아계: 약 10~15% (한국, 중국, 일본 등)
- 기타 태평양 섬주민: 약 7~10% (추쿠, 폰체이 등)
- 백인 및 미군 관계자: 약 7% 내외
종교는 스페인 식민 통치의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은 영역입니다. 1668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입도하면서 퍼진 가톨릭이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합니다. 개신교까지 합하면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95%를 넘습니다. 여기에 고대 조상의 영혼을 뜻하는 타오타오 모나(Taotao Mo'na) 신앙이 은연중에 남아 있어, 가톨릭 성당 옆에 조상의 영혼을 경외하는 이중 구조가 공존합니다. 괌 어디를 가든 크고 작은 성당을 마주치게 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출처: U.S. Census Bureau).
차모로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이나파마올렉(Inafa'maolek)입니다.이나파마올렉이란 '상호 존중과 협력'을 의미하는 차모로어로, 개인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을 말합니다. 괌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 문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 괌은 차모로 원주민에서 스페인, 미국, 일본을 거쳐 다시 미국 자치령으로 자리 잡은 섬으로, 그 역사가 지금의 혼합 민족·가톨릭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괌 물가와 한국과의 관계-가장 가까운 미국, 달라진 체감
괌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이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행시간 약 4시간, 미국 행정구역 가운데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괌의 관계는 관광 이상으로 촘촘합니다.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 제7함대 등이 괌에 주둔하고 있고, 유사시 괌 주둔 미군 항공전력이 4시간 안에 한반도에 도착할 수 있는 병참기지가 갖춰져 있습니다.
제가 괌을 알아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던 건 한국인 관광객 비중이었습니다. 전체 관광객의 무려 50%가 한국인이고, 35%가 일본인입니다. 매년 한국인만 75만 명이 찾으니 괌에서 한국어 신문과 방송이 만들어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괌에서 자동차를 렌트해 돌아보면 약 2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데, 이 작은 섬에 한국인이 그렇게 몰린다는 게 처음엔 잘 실감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제가 주변에서 괌 여행 후기를 들어보니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달러 환율이 1달러당 1,500원대를 오르내리면서 안 그래도 높은 현지 물가가 더 가파르게 체감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 값은 코로나 전보다 많이 착해졌지만, 식사 한 끼 값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후기가 꽤 많았습니다.
관광객이 줄자 공항에서 가까운 도심 쇼핑가의 명품점들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면세 혜택을 노린 쇼핑이 괌 여행의 큰 이유 중 하나였는데, 달러가 오르면서 그 메리트가 많이 사라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는 볼거리보다 머무는 공간에 예산을 더 집중하는 편이 여행 만족도가 높습니다. 어차피 관광 거리가 많지 않은 휴양지인 만큼, 숙소 퀄리티가 여행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괌과 한국 사이에는 가슴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입니다. 서울 김포에서 출발해 괌 안토니오 B. 원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습니다. 대한항공 창립 이래 사망자 수 기준으로 두 번째로 큰 사고였고, 이후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에서 일반 탑승객이 사망한 마지막 사고이기도 합니다. 괌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라는 사실과, 이 사고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 이 섬을 단순히 휴양지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요약: 괌은 한국과 지리적·역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곳이지만, 코로나 이후 달러 강세로 체감 물가가 높아져 쇼핑 메리트가 줄었고, 숙소 중심으로 여행을 설계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괌은 미국 땅인데 왜 대선 투표를 못 하나요?
A. 괌이 미국의 미편입 영토(Unincorporated Territory)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편입 영토란 미국 헌법이 완전히 적용되지 않는 자치 지역을 말합니다. 괌 주민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 본토 50개 주나 워싱턴 D.C.로 주거지를 옮겨야 대선 투표권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 승격 운동이 간헐적으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없습니다.
Q. 괌 여행, 지금도 갈 만한가요? 물가가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A. 솔직히 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는 체감 물가가 높은 편입니다. 비행기 값은 이전보다 저렴해졌지만 식사비나 쇼핑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쇼핑보다는 휴양 자체가 목적인 분들께 여전히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대신 숙소에 예산을 더 쓰는 전략이 만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Q. 괌의 해방의 날이 뭔가요? 7월 21일에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A.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은 1944년 7월 21일 미군이 일본 점령으로부터 괌을 탈환한 날을 기념하는 공휴일입니다. 약 31개월간 일본 점령 아래 강제 노동과 감금을 겪었던 괌 주민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괌 수도 하갓냐 주변 도로를 통제하고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려 관광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Q. 괌에서 한국어가 통하나요?
A. 관광지와 주요 쇼핑몰에서는 한국어가 상당히 잘 통하는 편입니다. 전체 관광객의 약 50%가 한국인이다 보니, 괌 현지에서 한국어 신문과 방송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입니다. 공식 언어는 영어와 차모로어이지만, 관광 중심 지역에서 한국어로 소통하는 데 크게 불편함은 없습니다.
결론
괌을 그냥 '가까운 해외 휴양지'로만 알고 갔다가 돌아오는 것과, 이 섬이 스페인·미국·일본을 차례로 거치며 형성된 복합적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은 체험의 밀도가 다릅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낀 건, 괌의 현재 모습—가톨릭 성당이 곳곳에 있고, 차모로어와 스페인식 성씨가 뒤섞이고, 해방의 날에 퍼레이드를 하는—이 모두 그 역사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괌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쇼핑보다는 숙소와 현지 음식 경험에 집중하는 방향을 권합니다. 달러 환율이 부담스럽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라테 스톤을 보거나 해방의 날 퍼레이드를 마주쳤을 때, 그 배경을 알고 있다면 단순히 사진만 찍고 지나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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