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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공유하는 유럽 도시 구조 (성벽 도시, 합벽 건축, 부르주아)

by tour1004 2026. 7. 2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 옆에 서서 집들을 올려다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건물과 건물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붙어 있고, 창문도 유난히 작아서 처음엔 그냥 그게 유럽 특유의 미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다닥다닥 붙은 구조 뒤에는 중세 유럽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치밀한 생존 논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사진 속 풍경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지역인 르 미디 일대나 꼴리우흐와 같은 지중해 인근 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골목길 풍경입니다.

성벽 도시가 만든 구조 — 왜 집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나

저도 처음엔 유럽 골목이 그냥 예스럽고 정겨워서 좋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 우리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겹쳐서인지, 낯선 도시인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로 같은 골목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니, 이건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산물이었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5세기에 무너진 뒤, 유럽은 오랫동안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슬람 세력의 지중해 장악, 장원제(莊園制)의 확산으로 도시는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여기서 장원제란 영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농노가 그 땅을 경작하는 봉건적 농업 체제를 말하는데, 이 구조 아래서는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기 어려웠습니다. 11세기가 되어서야 기후가 온화해지고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교역이 살아나면서 도시가 다시 생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도시는 철저히 방어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바이킹의 약탈, 영주들 간의 전쟁, 도적떼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높은 담장으로 둘러싼 성벽 도시(walled city) 구조가 필수였습니다. 성벽 도시란 말 그대로 외부 위협을 막기 위해 방어벽과 해자(城 주변에 파놓은 물길)로 둘러싸인 폐쇄형 도시를 가리킵니다.

문제는 성벽과 해자를 쌓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번 만들면 인구가 늘어난다고 쉽게 넓힐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한정된 성벽 안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했고, 그 해법이 바로 합벽 건축(party wall construction)이었습니다. 맞벽 건축이란 두 건물이 벽을 공유하며 붙여 짓는 방식으로, 벽 두 개 세울 재료로 집 두 채를 만들 수 있어 토지와 자재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제가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그 빈틈없는 건물들이 바로 이 방식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도시를 만든 왕과 귀족 입장에서도 이 구조는 나쁠 것이 없었습니다. 집과 상점에서 임대료를 받고, 시장에서 거래세를 거두고, 성문 앞에서 통행세(toll)를 징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톨(toll)은 오늘날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몰릴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였으니, 왕과 귀족이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집을 욱여넣는 합벽 건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도시 구조도 철저히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중앙에 시장 광장을 두고, 광장과 성문을 넓은 직선 도로로 연결했습니다. 광장 주변 도로 양쪽엔 귀족과 부유한 상인의 집,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장인과 하층민의 집이 배치됐습니다.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합벽 건축이라는 점은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골목과 미로 같은 구조는 침입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어 효과도 있었습니다.

  • 성벽 도시 — 방어와 수익을 동시에 노린 폐쇄형 구조
  • 합벽 건축 — 벽 하나로 집 두 채, 공간과 자재 모두 절약
  • 통행세(toll) — 성문에서 징수한 입장료, 톨게이트의 어원
  • 장원세·창문세 — 세금 회피가 좁고 긴 집 구조를 낳은 또 다른 이유

세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도로에 접한 집의 전면 너비로 세금을 매겼고, 나중엔 창문 수를 세어 세금을 거뒀습니다. 그러자 도시민들은 전면은 좁고 안쪽으로 길게 집을 짓거나, 창문을 아예 막거나 옆집 벽과 합쳐 없애버렸습니다. 세금을 피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더 늘어난 셈입니다. 대신 집 뒤쪽에 정원이나 중정(中庭, 건물 안쪽에 만든 사적 마당)을 두어 프라이빗한 공간을 확보했는데, 이 점이 마당을 도로 쪽에 두는 우리 전통 주거 방식과 확연히 다릅니다. 출처: The British Library — The Middle Ages

요약: 중세 성벽 도시의 방어 논리와 세금 회피가 맞물려, 유럽 특유의 합벽 건축 다닥다닥 구조가 탄생했습니다.

 

부르주아와 동남아까지 —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흔적들

암스테르담 운하 옆 집들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럽 본토와 비슷하게 붙여 지은 건 알겠는데, 집마다 도르래가 달린 고리가 꼭대기에 튀어나와 있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계단이 너무 좁아 가구를 그 도르래로 끌어올렸다는 겁니다. 물 쪽 전면 크기로 세금을 매기니 너비를 최대한 줄이다 보니 생긴 웃지 못할 구조였습니다.

암스테르담의 경우 수로(운하)가 곧 도로였습니다. 최대한 많은 집이 수로에 접할 수 있도록 땅을 아주 좁게 나눠 건물을 바짝 붙여지었습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배를 타야 했으니 수로 접안이 절대 조건이었고, 세금도 수로에 접한 너비 기준으로 부과됐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물가 바로 옆에 빈틈없이 늘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배를 타기엔 편했겠지만 습기와 벌레 문제는 지금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 보수도 한 면이 운하에 걸쳐 있으니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인구가 폭증하자 성벽을 유지하기 어려운 도시가 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은 19세기 들어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링슈트라세(Ringstraße)라는 순환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링슈트라세란 '환상(環狀) 도로'라는 뜻으로, 빈 구시가지를 감싸는 대형 순환로를 말합니다. 성벽이 사라지자 수백 미터씩 이어지는 맞벽 건물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고, 지금은 그게 오히려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되었습니다. 출처: City of Vienna — History Overview

부르주아(bourgeoisie)라는 단어도 이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부르주아란 원래 '성(bourg)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벽 안에 거주하며 재산을 축적한 상인 계층을 가리켰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성 안 주택의 유지보수비와 세금이 치솟자 일반 시민들은 성 바깥으로 밀려났고, 성 안에는 부유층만 남게 되었습니다. 자본과 계급을 상징하는 단어가 건축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게 제게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 구조가 유럽에서만 끝난 게 아니라는 점도 제 경험상 인상 깊었습니다. 싱가포르나 베트남을 여행할 때 보면 좁고 긴 집들이 도로를 따라 빈틈 없이 늘어선 모습이 유럽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유럽식 도시 구조를 이식한 흔적입니다. 베트남의 숍하우스(shophouse)가 대표적인데, 1층은 상점, 위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는 이 형태가 바로 중세 유럽 합벽 건축의 변형입니다.

물론 지금 관점에서 보면 불편한 것들도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보기엔 낭만적이지만 한여름 에어컨 실외기를 어디에 달아야 할지부터 막막했을 것 같고, 건물 측면을 보수하려 해도 옆집과 딱 붙어 있어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반면 추운 겨울엔 양쪽 건물이 서로 단열재 역할을 해줘 난방 효율이 높다는 건 실용적인 장점입니다. 이웃과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요즘 분위기와 달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다 보면 아무래도 서로를 모른 척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요약: 성벽 도시의 합벽 구조는 부르주아라는 계층 개념을 낳았고, 식민지 경로를 따라 동남아시아까지 퍼진 도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럽 집들이 왜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나요?

A. 중세 성벽 도시의 한정된 공간 안에 최대한 많은 건물을 넣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벽과 해자를 넓히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그 안에서 공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벽을 공유하는 합벽 건축이었습니다. 도로 면적에 따른 세금과 창문세를 피하려는 이유도 더해지면서 지금의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Q. 부르주아라는 단어가 건축이랑 관련 있다고요?

A. 네, 부르주아(bourgeoisie)는 원래 '성(bourg)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벽 도시 안에 살며 상업으로 부를 쌓은 계층이 부르주아로 불렸고, 이후 성 안 거주 비용이 치솟으면서 자연스럽게 부유층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건축 구조에서 계급 용어가 탄생한 사례입니다.

 

Q. 암스테르담 집들은 왜 그렇게 좁고 높게 생겼나요?

A. 암스테르담은 수로에 접한 너비로 세금을 매겼기 때문에, 너비를 최소화하고 대신 위로 올리는 구조가 생겼습니다. 최대한 많은 건물이 운하에 접하도록 땅을 좁게 나눈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계단이 너무 좁아 가구를 건물 꼭대기 도르래로 끌어올려야 했던 구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Q. 동남아에도 유럽 같은 좁고 긴 집이 있는 이유가 뭔가요?

A. 대항해 시대에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를 식민지화하면서 유럽식 도시 구조를 이식한 결과입니다. 베트남의 숍하우스처럼 1층 상점, 위층 주거 형태의 건물이 대표적이며, 이는 중세 유럽 합벽 건축의 변형입니다.

 

Q. 유럽 오래된 집에 살면 실제로 불편한 점이 많지 않나요?

A. 단열은 오히려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양쪽 건물이 서로 열을 막아주기 때문에 겨울 난방 효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온돌과 같은 바닥 남방 시스템은 없으니, 춥긴 마찬가지 였을 것 같습니다. 반면 에어컨 실외기 설치 공간이 없고, 건물 측면 보수가 어렵고, 소음 문제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여름이 더워지는 상황에서 냉방 인프라를 갖추기가 구조상 쉽지 않은 점이 현실적인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유럽 골목을 걸을 때 그냥 예쁘다고만 느꼈던 제가, 그 구조 안에 중세 유럽의 생존 논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벽 도시, 맞벽 건축, 세금 회피,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탄생까지 — 도시 구조 하나가 역사와 경제와 계급을 동시에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번에 유럽이나 동남아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건물 사이 틈과 창문 크기, 수로와의 거리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그냥 지나쳤던 골목 하나가 훨씬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저는 그 경험 덕분에 암스테르담의 좁은 건물 꼭대기 도르래를 보고 피식 웃을 수 있게 됐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QER_CYZP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