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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흔히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을 이루는 작은 유럽 국가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벨기에를 여행해 보면 단순히 ‘작은 나라’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적 다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벨기에 북부의 플랜더스(Flanders) 지역은 중세 유럽의 상업과 예술이 꽃피었던 역사 도시부터 초콜릿, 와플, 맥주, 다이아몬드, 만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벨기에는 상당히 친숙한 나라입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스머프,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플랜더스의 개》, 여행 사진에서 한 번쯤 보았던 오줌싸개 소년상, 그리고 벨기에 초콜릿과 와플까지 생각보다 많은 문화가 벨기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존에 알려진 벨기에 여행 정보에는 오래된 자료나 관광지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처럼 섞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2026년 현재 벨기에와 플랜더스의 공식 관광·문화유산 자료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면서, 브뤼셀부터 브뤼헤·겐트·안트베르펜까지 여행할 때 알아두면 좋은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벨기에 여행의 핵심, 플랜더스는 어떤 곳인가?
플랜더스는 벨기에 북부의 네덜란드어권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 지역에는 브뤼셀, 브뤼헤, 겐트, 안트베르펜, 루벤, 메헬렌 등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자 입장에서 플랜더스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브뤼셀을 거점으로 브뤼헤와 겐트, 안트베르펜을 각각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여행 일정도 충분히 구성할 수 있습니다.
플랜더스를 여행할 때는 한 도시만 집중하기보다는 브뤼셀 → 브뤼헤 → 겐트 → 안트베르펜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도시를 연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브뤼셀에서는 만화와 초콜릿, 브뤼헤에서는 중세 도시와 운하, 겐트에서는 성과 중세 상업도시의 역사, 안트베르펜에서는 루벤스와 다이아몬드, 항구 문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뤼셀의 상징, 오줌싸개 동상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을 처음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마네켄 피스(Manneken-Pis), 즉 오줌싸개 동상입니다. 이 작은 동상은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Jérôme Duquesnoy the Elder)가 만든 원본이 아닙니다. 2026년으로 407주년을 맞이한 브뤼셀의 역사적 상징물로, 원본은 도난 방지를 위해 현재는 브뤼셀 시립박물관, 즉 그랑플라스의 메종 뒤 루아(Maison du Roi)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동상은 특별한 날이면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의상이나 행사용으로 제작된 옷을 입으며, 이와 관련된 의상들은 전시관에 따로 보관되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오줌싸개 소년상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오줌싸개 소녀상(1987년)도 세워졌으나, 도난 위험 때문에 현재는 철창 안에 보호되어 있습니다. 소녀상에 던져지는 동전은 의료 재단에 기부되어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늦게 등장한 오줌싸개 강아지상(2000년)은 자동차 사고로 파손된 뒤 복구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오줌싸개 시리즈는 단순한 관광 상품에 그치지 않고, 브뤼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유머 감각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브뤼셀 여행의 중심, 그랑플라스
오줌싸개 동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셀의 핵심 광장입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광장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으며, 빅토르 위고도 극찬한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온 곳 "으로도 유명합니다. 광장 주변에는 브뤼셀 시청을 비롯해 역사적인 길드 건물과 왕의 집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딕 양식의 시청은 그랑플라스의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광장 중심에는 눈부신 황금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거리 음악가들이 재능을 펼치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로는 카를 마르크스가 실제로 살았던 건물이 현재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름밤 10시 이후에는 화려한 조명 쇼가 펼쳐져 광장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배가되며, '오메강'이라는 전통 축제도 이곳에서 열려 많은 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브뤼셀은 왜 ‘만화의 수도’라고 불릴까?
브뤼셀은 만화 강국 벨기에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시내 곳곳에는 약 80점 이상의 다양한 벽화가 존재하는데, 그중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 벽화가 재치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브뤼셀 만화 여행의 장점은 별도의 테마파크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시가지 골목을 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만화 탐방이 됩니다.
스머프의 나라, 벨기에
벨기에는 '스머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스머프는 벨기에 작가 페요의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스머프를 주제로 한 인형과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전문 가게도 운영됩니다.
브뤼셀에서는 스머프를 주제로 한 다양한 상품과 조형물을 만날 수 있고, 만화 관련 박물관에서는 스머프뿐 아니라 틴틴과 스피루 등 벨기에 만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벨기에 만화센터 역시 빅토르 오르타가 설계한 아르누보 건축물 안에서 만화의 역사와 작가, 캐릭터를 소개하고 있어 건축과 만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벨기에가 이토록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접해온 스머프, '플랜더스의 개', 오줌싸개 동상 같은 콘텐츠들이 사실 모두 이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관광지로서의 벨기에를 넘어, 문화적으로 깊은 친밀감을 형성해 온 나라임을 증명합니다.
벨기에 초콜릿은 왜 유명할까?
벨기에 초콜릿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벨기에가 카카오 생산국인 아프리카 콩고를 지배하며 우수한 품질의 카카오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이것이 초콜릿 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인물이 장 노이하우스(Jean Neuhaus)입니다.
1857년 브뤼셀의 생튀베르 왕립 갤러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장 노이하우스는 약의 맛을 개선하기 위해 초콜릿으로 약을 감싸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그의 손자인 장 노이하우스 주니어가 약 대신 부드러운 속을 넣은 초콜릿을 만들었고, 1912년 오늘날의 벨기에식 프랄린이 탄생했습니다.
1915년에는 장 노이하우스 주니어의 아내 루이즈 아고스티니가 리본으로 묶는 고급 초콜릿 상자인 발로탱(ballotin)을 개발하면서 벨기에 초콜릿이 선물용 고급 상품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벨기에 최초의 초콜릿 가게는 공장과 함께 운영되었으며, 창업자의 흉상 역시 초콜릿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독특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콜릿의 기원도 흥미롭습니다. 카카오로 차를 마시다 남은 것이 굳어진 데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 초콜릿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벨기에 여러 도시에는 초콜릿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브뤼헤 박물관에서는 카카오나무와 열매 실물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초콜릿 제작 과정을 관람하는 것은 물론,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만든 초콜릿은 현장에서 바로 제공됩니다. '초콜릿과 행복'이라는 이름의 가게에서는 초콜릿으로 만든 동전, 모자, 하이힐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며, 벨기에 사람들이 초대를 받으면 초콜릿, 꽃, 와인을 선물로 가져가는 문화도 인상적입니다.
현재 플랜더스와 브뤼셀에는 수많은 초콜릿 전문점이 있으며, 벨기에 전역에는 320개 이상의 초콜릿 매장이 있다
벨기에 와플, 브뤼셀식과 리에주식은 다르다
초콜릿과 함께 벨기에를 대표하는 음식이 와플입니다.
특히 여행자들이 흔히 ‘벨기에 와플’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크게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플이라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브뤼셀 와플은 직사각형 모양이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반죽 자체가 강하게 달지 않아 슈거파우더, 초콜릿, 과일 등을 곁들여 먹습니다.
반면 리에주 와플은 크기가 조금 작고 두툼하며, 반죽 안에 설탕 결정이 들어 있어 구워지는 과정에서 바삭하고 달콤한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브뤼헤
브뤼헤는 북유럽 최고의 운하 도시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자주 비교되며, '다리'라는 뜻을 가진 도시 이름처럼 수많은 다리가 운하를 연결합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브뤼헤의 마르크트 광장에는 높이 83m의 종탑이 우뚝 서 있으며, 366개의 나선 계단을 오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헤 시내의 그림 같은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이 종탑은 15분마다 카리용 악기로 장엄한 종소리를 울려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겐트, 중세 상업도시의 흔적을 만나다
브뤼헤와 함께 플랜더스를 대표하는 도시가 겐트(Ghent)입니다.
겐트는 레이에강과 셸데강이 만나는 곳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이며, 중세에는 직물 산업과 국제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겐트는 11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서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13세기에는 약 5만~6만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직물 산업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겐트의 대표 명소, 플랜더스 백작의 성
현재의 석조 성은 1180년 플랑드르 백작 필리프(필립) 반 덴 엘자스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곳에는 목조 요새와 초기 방어시설이 존재했습니다. 성 내부에서는 중세 기사 문화뿐 아니라 당시의 사법제도와 고문 도구 등 어두운 역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좁고 긴 계단을 오르면 겐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그라벤스틴은 한때 백작의 권력을 상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원과 감옥, 공공시설 등으로 활용되었고, 근대에는 공장과 면직물 산업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크게 훼손된 성을 복원하면서 오늘날 겐트를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겐트에서는 300년 전통의 '코 모양 사탕'이 길거리에서 판매되며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겐트의 야경은 중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습니다.
《플랜더스의 개》와 안트베르펜
플랜더스 여행에서 안트베르펜은 빠질 수 없는 핵심 도시입니다. 벨기에 최대 항구 도시인 안트베르펜의 시청 광장에는 거인 안티고온을 물리친 영웅 브라보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베네룩스 3국에서 가장 높은 성당으로 루벤스의 그림과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1521년 완공되었으며 건설에 약 170년이 걸렸습니다. 현재 외벽 보수 공사 중이며, 예배가 없을 때 입장료를 내면 내부를 관람할 수 있고 연간 20만 명 이상이 방문합니다. 북쪽 첨탑은 약 123m에 이르며, 저지대 국가의 대표적인 고딕 성당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부에는 루벤스의 대표작 여러 점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세움〉, 〈십자가에서 내림〉 등 루벤스의 작품을 실제 성당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성당 앞에는 네로와 파트라슈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어 한국, 중국, 일본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도시 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은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거래 중심지로도 유명합니다. 약 1,800개 이상의 다이아몬드 상점이 밀집해 있으며,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가 이곳에서 정밀 가공되는 과정을 직접 관람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역사와 화려한 작품들이 전시된 전시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맥주, 왜 맥주마다 잔이 다를까?
벨기에의 맥주 문화는 그 깊이와 다양성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 역시 플랜더스에 있으며, 벨기에 맥주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맥주마다 전용 잔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각 맥주의 향과 맛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문화적 전통입니다. 한 가게의 '맥주 벽'이라 불리는 진열장에는 무려 1,915가지 종류의 맥주와 전용 잔이 전시되어 있으며, 가게 주인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이를 수집해 오고 있습니다.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수도원에서 시작되어 6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스페인 국왕이 그 맛을 잊지 못해 가져갈 정도였다는 일화는 이 양조장의 품격을 잘 보여줍니다. 과일 맥주, 성탄절 맥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생산합니다.
플랜더스 여행에서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
플랜더스는 도시 관광뿐 아니라 자전거 여행으로도 유명합니다.
평탄한 지형과 촘촘한 도시·도로망 덕분에 자전거를 이용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여행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충분하다면 브뤼셀의 도시 관광만 하는 것보다 플랜더스의 작은 마을과 평야를 자전거로 경험하는 것도 벨기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방법입니다.
마무리|작지만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를 가진 나라, 벨기에
벨기에를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라는 한 문장으로 기억한다면 실제 여행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플랜더스의 도시들을 천천히 둘러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브뤼셀은 만화와 초콜릿, 그랑플라스와 마네켄 피스의 도시이고, 브뤼헤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간직한 운하 도시이며, 겐트는 상업과 정치의 역사가 살아 있는 중세 도시입니다. 안트베르펜은 루벤스의 예술과 항구, 다이아몬드 산업이 공존하는 현대적인 도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벨기에는 역사와 대중문화, 음식과 예술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결합된 여행지입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파리나 런던처럼 거대한 도시만 바라보기보다, 비교적 작은 거리 안에서 수백 년의 역사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벨기에 플랜더스 여행을 일정에 넣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