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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라고 하면 호찌민, 하롱베이, 쌀국수 정도를 떠올리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접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베트남은 북부와 남부의 역사가 완전히 다른, 어쩌면 두 개의 나라가 합쳐진 곳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 알아도 여행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남북이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는 이유-베트남 역사
여행을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 나라의 역사를 먼저 찾아보게 됩니다. 처음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는 그냥 현지에서 부딪히며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때 놓친 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베트남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받은 충격은 "북부와 남부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북부는 기원전 한나라의 지배 아래 약 천 년간 중국 문화권에 속했습니다. 여기서 '한나라 지배'란 단순한 정치적 복속이 아니라 언어, 유교 사상, 관료 제도까지 통째로 이식된 문명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반면 남부는 중국이 아닌 인도 문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바다를 통해 들어왔고, 그 위에 참파 왕국이라는 독자적인 문명이 꽃을 피웠습니다.
삼국지 시대, 지금의 베트남 북부에 해당하는 '교지' 지역에서는 사 섭이라는 인물이 유교와 불교를 퍼뜨리며 현지 문화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베트남에서 그를 '사왕 부흥'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1세기경 중국의 지배에 맞서 쯩짝과 쯩니 자매, 즉 쯩 자매가 봉기를 일으킨 사건은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의 근거로 남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 하노이의 사당이나 유적지를 방문하면, 그냥 오래된 건물 하나를 보고 지나치게 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과의 연결고리입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가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화산 이 씨가 대표적입니다. 베트남 사료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한국 사료에는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역사라는 게 한 나라의 기록만으로는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 북부: 한나라 통치 약 천 년, 유교·한어 중심 중국 문화권 형성
- 남부: 인도 문명(힌두교·불교) 영향, 참파 왕국이 독자 문명 구축
- 베트남 독립은 당나라 통치가 끝난 939년 이후 본격화
- 쯩 자매 봉기(1세기)는 베트남 민족 정체성의 상징적 사건
참파 왕국과 북진 남하 — 통일까지의 긴 여정
베트남 남부 문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참파 왕국입니다. 참파 왕국이란 2세기경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이주해 온 참파족이 지금의 다낭 근처 미선 지역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입니다. 힌두·불교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캄보디아 앙코르 톰의 벽화에 크메르와의 전쟁 장면이 묘사될 만큼 한때는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북부 베트남은 중국의 침략을 막으면서 북쪽으로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북쪽은 해발고도가 높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고, 남쪽은 더위와 말라리아·뎅기열 같은 풍토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풍토병'이란 특정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서만 유행하는 질병을 뜻하는데, 당시 군대가 남하할 때 전투보다 이 풍토병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 왕조는 하노이(옛 탕롱)를 수도로 삼고 '북진 남하' 정책, 즉 북쪽을 지키며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전략을 꾸준히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참파 왕국은 16세기에 멸망 직전까지 몰렸고, 1802년에 이르러서야 지금 우리가 아는 베트남의 영토가 완성됩니다. 참파족은 이 과정에서 힌두·불교에서 이슬람으로 종교를 바꾸는 내부 변화를 겪으며 결속력을 잃었고, 그것이 쇠락을 앞당긴 원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통일 이후 후에는 남북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리적 이유로 수도가 됐는데, 중국 왕궁 구조와 상당히 유사한 황성이 자리한 도시입니다. 저는 후에를 여행할 때 이 배경을 알고 갔는데, 덕분에 유적지 하나하나가 그냥 건물이 아니라 '통일의 상징'으로 보였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쌀국수 '퍼'의 진짜 기원 — 음식으로 읽는 베트남
베트남 하면 쌀국수, 쌀국수 하면 퍼(Phở)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퍼를 먹으면서 "왜 소고기 육수를 쓸까?" 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 있으신지요.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주로 닭이나 돼지 육수를 쓰는 것과 확연히 다릅니다. 제가 직접 하노이에서 퍼를 먹어보니, 그 진한 육수의 깊이가 다른 나라 면 요리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퍼의 기원은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음식 '포토푀(pot-au-feu)'에서 영향을 받아 소고기 육수 방식이 정착했고, 면 자체는 중국 광둥 지방에서 화교를 통해 동남아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화교'란 중국 본토 밖에 정착해 살아가는 중국계 이주민을 뜻하는데, 이들이 동남아 각지에 중국 식문화를 퍼뜨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20세기 초 하노이 거리에서 퍼를 배달 판매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도 남아 있어, 퍼의 역사가 우리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퍼의 원조를 따지자면 북부 하노이 쪽입니다. 남부 호찌민에서 파는 퍼는 고명도 많고 단맛이 강한 편인데, 이것도 남북의 문화 차이가 음식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입니다. 볶음밥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부에서는 '껌랑', 남부에서는 '껌지'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다르다는 것 자체가 문화권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바게트 빵인 반미(Bánh mì)가 일상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도, 막상 현지에서 접하면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놀랐습니다.
느억맘과 사이공 라테 — 베트남 음식의 뿌리
베트남 음식을 먹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감칠맛이 깔려 있습니다. 그 비밀은 느억맘(Nước mắm)에 있습니다. 느억맘이란 민물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액젓으로, 베트남 음식 거의 모든 곳에 들어가는 기본 조미료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의 간장이나 된장처럼 요리의 바탕을 만드는 소스입니다. 동남아의 모든 소스가 결국 이 '액젓' 계열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느억맘이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더운 동남아에서 육류 단백질을 보관하고 섭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느억맘은 고기 없이도 단백질과 감칠맛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음식을 먹어보면 고기가 적어도 느억맘이 들어간 요리는 충분히 든든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출처: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발효 어류를 활용한 소스는 동남아 지역 주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커피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사이공 라테'는 베트남의 진한 원두커피에 연유를 섞어 마시는 방식인데, 베트남 전쟁 시기 프랑스식 카페라테가 현지화된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연유'란 우유를 농축해 설탕을 더한 것으로, 냉장 보관이 어려운 동남아 기후에서 신선한 우유 대신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식재료입니다. 하노이에 '콩카페(Cộng CàPhê)'라는 카페 체인이 있는데, 북베트남 군복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꾸며 혁명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곳입니다. 제가 실제로 가봤더니 관광객보다 현지 젊은이들이 더 많이 앉아 있었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출처: CIA World Factbook에 따르면 베트남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약 67%에 달해, 이런 젊은 소비문화가 빠르게 성장하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트남 북부와 남부 여행, 어느 쪽이 더 볼 게 많나요?
A. 제 경험상 두 지역은 비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북부 하노이와 사파는 중국 문화권의 역사 유적과 산악 트레킹이 매력이고, 남부 호치민과 메콩 델타는 활기찬 도시와 수상 문화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냅니다. 처음 베트남을 방문한다면 남북 한 곳씩 포함한 루트를 추천합니다.
Q. 베트남 쌀국수 퍼(Phở)를 제대로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A. 퍼의 원조는 북부 하노이입니다. 남부 호치민의 퍼는 고명이 풍부하고 단맛이 강한 편이라 처음 접하는 분들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지만, 진한 소고기 육수 본연의 맛을 원한다면 하노이 현지 식당을 찾는 편이 낫습니다. 저도 두 곳을 비교해봤는데 차이가 꽤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Q. 베트남 참파 왕국 유적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다낭 근처 미선(Mỹ Sơn) 유적지가 대표적입니다. 힌두 사원들이 밀림 속에 남아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낭이나 호이안을 방문하는 일정이라면 반나절 코스로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Q. 느억맘(Nước mắm)이 너무 강하면 베트남 음식 자체가 힘들지 않나요?
A. 직접 먹어보니 처음에는 특유의 발효 냄새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에 직접 들어가면 냄새보다 감칠맛이 훨씬 강하게 살아나서 생각보다 거부감이 적었습니다. 찍어 먹는 소스로 나올 때는 양을 조금씩 조절하며 시작하면 무리 없이 적응됩니다.
결론
베트남은 아직 태국만큼 구석구석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만큼 사파처럼 덜 알려진 북부 지역이나 호이안 같은 남부 도시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제 경험상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일수록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더 크게 체감됩니다. 북부는 중국 문명, 남부는 인도·참파 문명, 도심은 프랑스 문화라는 큰 그림만 머릿속에 넣고 가도 유적지와 음식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호텔이나 맛집 검색보다 역사 공부를 먼저 조금 해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맥락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그 차이를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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