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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대만을 처음 찾았을 때, 길거리에 온통 일본 차와 일본 오토바이가 넘쳐났습니다. 호텔 근처 슈퍼에서도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이 있었고, 한국 제품은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친일 국가'라는 표현으로 넘겼는데, 나중에 대만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얄팍한 이해였는지 알게 됐습니다. 대만은 단순히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외세 지배와 정체성 혼란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땅입니다.

포르투갈부터 정성공까지 — 식민지배의 시작
타이완 섬에는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오스트로네시아족(Austronesian) 계통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스트로네시아족이란 동남아시아·태평양 일대에 퍼져 살던 어족 집단을 뜻하는데, 대만 원주민이 이 계통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만이 중국 본토와 역사적으로 전혀 별개의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럽인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한 것은 1543년, 포르투갈 선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섬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해 '포르모사(Formosa)', 즉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후 17세기에 들어 네덜란드가 남부를 점령하고 무역 거점으로 활용했는데, 사탕수수 농업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중국 본토의 한족을 대거 이주시킨 것이 훗날 대만 인구 구성의 원형이 됩니다. 이때 건너온 한족들의 후손을 훗날 본성인(本省人)이라 부르게 됩니다. 여기서 본성인이란 17세기 이후 네덜란드 통치 시기부터 타이완 섬에 정착한 한족 계통 주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661년, 명나라가 청나라에 무너진 뒤 끝까지 저항하던 명나라 잔당의 수장 정성공(鄭成功)이 타이완 섬으로 건너와 네덜란드군을 몰아냈습니다. 38년에 걸친 네덜란드 지배를 끝낸 것입니다. 정성공 세력은 '정 씨 왕국'을 세우고 청나라에 맞섰지만, 1683년 결국 청나라에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이 22년간의 정 씨 왕국이 오늘날 중국이 대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역사적 근거 중 하나로 쓰인다는 점은 꽤 씁쓸한 아이러니입니다.
- 기원전 3000년 이전: 오스트로네시아족 원주민 거주
- 1543년: 포르투갈인 최초 발견 — '포르모사' 명명
- 17세기: 네덜란드 남부 점령, 한족(본성인 조상) 이주
- 1661~1683년: 정성공의 정씨 왕국 → 청나라 편입
일본의 식민 통치 — 왜 대만은 일본에 우호적인가
19세기말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청나라는 전리품으로 타이완 섬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1895년 타이완 총독부가 설치됐고, 초반에는 현지인들의 강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른 식민지에서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타이완인에게 일본인과 동일한 법률을 적용하고, 같은 교육 체계 안에 편입시키는 동화(同化) 정책을 실시한 것입니다. 여기서 동화 정책이란 피지배 민족을 지배 민족의 언어·문화·법 체계로 흡수해 정체성 자체를 바꾸려는 식민 통치 방식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대만을 찾았을 때 느꼈던 건, 거리 곳곳에 일본 문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순한 수입품 선호가 아니라, 생활 방식 자체가 일본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반세기에 가까운 식민 통치의 결과라는 걸 나중에야 이해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타이완인 약 20만 명을 징집해 전쟁에 투입했습니다(출처: 국사관 타이완 문헌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많은 본성인 들은 일제 통치 시기에 이뤄진 인프라 개발과 경제 성장을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시각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후 국민당 정부의 가혹한 통치를 경험하고 나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기억하게 된 맥락을 함께 봐야 공정한 이해가 됩니다.
태국이나 라오스를 여행할 때도 그랬는데,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아시아 여행자 중에 대만인과 일본인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현지에 아예 정착해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반면, 대만인들은 짧은 여행자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짧은 인연들 속에서도 대만인들은 유독 예의 바르고 차분하다는 인상이 남았는데, 이게 어쩌면 복잡한 역사 속에서 다져진 성향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2.28 사건과 본성인·외성인의 균열 — 대만 정체성의 진짜 출발점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연합국의 결정에 따라 타이완 섬은 중국 국민당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세력이 지배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에 살고 있던 본성인들과의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이때 대륙에서 건너온 한족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외성인이란 1945년 이후, 특히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세력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해 온 중국 대륙 출신 한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국민당 정부는 본성인들을 일제에 세뇌된 존재로 규정하고 폭압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이 억눌린 분노가 폭발한 것이 1947년 2월 28일의 2.28 사건(二二八事件)입니다. 발단은 사소한 단속 충돌이었지만, 군대가 동원된 무력 진압으로 번지면서 최소 1만 명에서 2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처음 제대로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만 현대사에서 이 정도 규모의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2.28 사건 이후 계엄령(戒嚴令)은 무려 1987년까지 지속됩니다. 여기서 계엄령이란 군이 민간 행정·사법권을 대신 행사하는 비상 통치 상태를 말하는데,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계엄령 기간 중 하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재단법인 2.28 사건 기념 재단). 이 40년의 억압이 본성인들로 하여금 국민당 지배보다 일제 시기를 상대적으로 낫게 기억하게 만든 비극적인 역설을 낳았습니다.
오늘날 대만인들 사이에서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있는 건 이 오랜 역사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입니다. 제가 유튜브를 통해 대만 방송을 접하면서 느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만인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고, 이제는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K팝 가수 쯔위가 대만 국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중국의 비난을 받았던 사건은 그 정체성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만이 친일 국가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A. 단순히 친일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약 50년간의 일본 식민 통치와 이후 국민당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제 경험상 대만인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맹목적 호감이 아니라, 자국 역사에 대한 나름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Q. 본성인과 외성인은 지금도 갈등이 있나요?
A. 과거보다는 많이 완화됐지만, 정치적 지향 차이로 여전히 일정한 구분이 남아 있습니다. 본성인 계통은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하고, 외성인 계통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세대가 내려갈수록 이 구분 자체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Q. 2.28 사건이 대만에서 어떻게 다뤄지나요?
A. 현재 대만에서는 2월 28일이 공식 국가 기념일로 지정돼 있으며,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립니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보상이 이뤄졌고, 재단법인 2.28 사건 기념 재단이 설립돼 관련 연구와 기념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대만은 왜 중국과 사이가 나쁜가요?
A. 핵심은 국공내전(1945~1949)에 있습니다.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 섬으로 철수하면서 중화민국을 유지했고,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대만을 분리된 성(省)으로 보지만, 대만은 스스로를 독립된 주권 국가로 인식하고 있어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
대만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면, 이 나라가 왜 그토록 복잡한 정체성을 품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원주민의 땅에서 포르투갈·네덜란드·정 씨 왕국·청나라·일본·국민당 정부로 이어지는 지배의 연속은, 대만인들로 하여금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2005년에 봤던 일본 제품으로 넘쳐나던 거리는 이제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류의 바람이 대만 방송과 거리에도 닿아 있고, 대만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해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유튜브를 통해 대만 방송을 자주 들여다보게 됐는데, 반대로 한국에서도 이제 대만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TSMC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듯, 대만은 한국과 가장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역사를 알고 나서 만나는 대만은, 그냥 여행지 이상의 무게를 갖게 됩니다.